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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참 바보/ 마장터의 종소리

by 창 포 2013. 4. 5.

 

 

 

 

 

나는 참 바보다.요즘 세상에 자동차 운전을 못한다.

                                                         항상 애꿏은 두 다리에 의존한다.

30분 안팍의 모임엔 늘 땅바닥을 밝고다닌다. 차가 못 미더워서가 아니다.

             지나가는 차량 물결속의 아는이들이 연민의 눈길로 바라봐도 모른다.

 

 

 

 

 

 

 

 

 

 

 

 

마장터의  종소리                            

 

글: 황장진

 

 

마장터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깊은 두메산골의 하나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로

넘어가는 샛령(750m) 밑에 숨어 있는 마을이다.

샛령 네거리에는 대간령(새이령)이라고 허름한 나무표지판이 버티고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샛령 또는 큰새이령이라고 부른다.

지름길, 샛길의 준령이란 뜻이다.

큰새이령은 설악산 북쪽 마산봉(1,052m)과 남쪽 신선봉(1,204m)사이를 넘는 길이다.

 

 마장(馬場)터는 양순한 산들이 어깨동무하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이 터는 대간령을 넘나들던 말이 쉬어가는 마방과 주막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장꾼들이 쉬어가며 막걸리로 목을 축이던 주막집이나 묵어가던 집들은 없고

달랑 두 집만 한 길 넘는 잡초 밭에 싸여있다. 

 

 이 마을은 1970년대 초 화전민이주대책사업으로 집들을 모두 철거했다.

무장공비의 침투를 막고 화전민들의 삶을 돕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들이 살던 집터와 논밭엔 낙엽송을 심었다.

하늘 꽁무니를 찌를듯한 늘씬한 [20m이상] 키의 낙엽송 수십 만 그루가 ‘우~ 우~’ 반긴다.

 전봇대도 안 보이고 손전화도 먹통이 되는 마을,

 푸르디 푸른 숲과 맑디맑은 계곡물이 유유자적 노닌다.

 오던 길가엔 멧돼지가 갓 훑고 간 흙바닥이 불그레했다.

멧돼지 삵 산양들이 잡초 숲에 보금자리를 털고 낮잠을 즐기고 있어도 모르겠다. 

  폭 한 두자짜리 오솔길은 미시령길이 뚫리기 전까지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 제일 짧은 큰 길이였다.

수 백 년 수 천 년 우리 조상들의 땀방울과 애환이 스민 길이다.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진부령이나 미시령보다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여긴 인제 지방에선 감자 콩 팥 옥수수 등 곡물을,

고성 양양에선 소금 미역 고등어 갈치 등 수산물을 지게에 지거나 소나 말 등에 싣고 와서

흥정하던 꽤나 흥청거리던 장터였다.

부지런한 이들은 수산물 값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위해

멀리 원통 장까지 오가다보니 중간지점인 여기서 자주 묵게 되었단다.

한창 번창할 때는 50가구가 넘을 때도 있었다나.

 

 해방 전까지만 해도 인제군수와 양양군수가 샛령 꼭대기 성황당에서 성황제를 올렸단다.

 마꾼들이 쉬어갔다는 주막 터가 아직도 버티고 있다.

옛길은 이런 저런 사연을 품고 한적하게 누워 가물에 콩 나듯 지나가는 길손을 맞고 있다.

길가의 풀과 나무들이 무성해 양어깨를 안마한다.

고개 낮추기 운동, 높은 포복자세와 뛰어넘기 재미를 더한다.

장꾼들이 몰리고 50호가 떠들썩되던 골짜기엔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40살 장년의 팔팔한 나이다.

 

 이 길은 1970년대 진부령과 미시령이 포장되면서 잊혀져가는 길이 되었다.

 

마장터는 백승혁(54살)씨와 정준기(63살)씨가 지키고 있다.

정씨는 봄에는 취나물 고사리, 여름엔 약초, 가을엔 싸리버섯, 송이, 능이 곰버섯 등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고 한다. 백씨의 통나무집에는 제법 큰 종이 달려있다.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청아한 종소리가 고요한 계곡을 흔든다.

주인장이 씩씩거리며 다가온다.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도움이 필요할대 주인을 부르라는  종일까,

엣날 장날에 쓰던 경매종일까, 민방공훈련종일까,

아니면 정오나 자정을 알리는 시보종일까?

치기어린 한속세인탓에 편히쉬던 동물들이 찡그렸을 것이다.

 빵을 주고 가려던 창포께서도 백씨의 표정이 심상치않자 포기하고 만다.

 

계곡 따라 잠시 내려가다 보니 물이 거슬러 흘러오고 있는 게 아닌가.

되돌아 와서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너 댓 번이나 돌다릴 건너뛰거나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물을 차면서 계곡을 자꾸자꾸 내려간다.

 해안선대장께선 바닷물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계곡물도 엄청 좋아하는가 보다.

 파랗던 하늘이 거무튀튀하게 화났다.

우비 입을 짬도 주지 않고 소나기를 냅다 쏟아 붇는다.

 

푸른 계곡물이 황토물이 되어 “어디 한 번 건너 봐라.”며 누른 배를 벌름거린다.

할 수 없이 강산해님의 주장대로 바로 뒷산 꼭대기로 헐레벌떡 발길을 재촉한다.

깎아지른 것처럼 곧추선 793m의 만만찮은 처녀봉이다.

길을 새로 내면서 17명 모두 묵묵히 한 줄로 잘도오른다.

봉우리 꼭대기에 올라섰지만 운무에 가려 위치를 가늠할 수 없다.

백씨한테 더 굽실거리며 가는 길을 물었더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환호성이 울린다.  청포도님이 가리키는 쪽 저 아래에 빨간 지붕,

 하얀 비닐하우스가 잠깐 구름사이로 배시시 웃는다. 알프스리조트 마을이다.

‘이젠 살았다, 나무아비타불,관세움보살!.아쉬울 때만 되뇌는 말이다.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 꿀꺽꿀꺽 마시니

이리 시원하고 맛있을 수가 있을까!  처음 길을 낸 이 처녀봉을

우리 산악회의 이름을 따 ‘와바봉’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산속 길 10시간, 피곤한줄 모른다. 좋은 산수, 좋은 산 벗 탓이리라.

 

“땡그랑 땡그랑” 종소리, 그게 경종이란 걸 왜 몰랐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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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와라바라산악회 회원이시고  수필가이신 한우리님의 수필집에서...

2010년 8월29일.  북설악 마산봉 산행후

하산길인  마장터에서 느낀일과

물굽이 계곡을거쳐  마을로 하산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