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는:강원도 화천군 상서면과 철원군 근남면의 경계에 있는 한북정맥의 최상단에있는 산.
산행코스는 마현리 말고개~대성산~수피령. (산행시간 5시간30여분)
언제:2011년11월5일. 토요일. 날씨는 흐리다 맑음.
주최는 강원도 화천군청. 15사단
대성산을 가기전에 여기 저기 검색을 해도 화천 대성산은 자료가 많지가않았다.
하물며 산행지도도 찾기가 쉽지않고...
대성산은 누구라도 오르고 싶을 때 언제라도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닙니다.
남북한이 통일된다면 몰라도 산 전체를 군부대가 관할해 사전허가를 받지 않고는 오를 수 없습니다.
남과 북이 한눈에 보이는데다 저 산 너머 북한의 산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고산이어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것은 당연하고 이 산을 오르겠다는 것은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지요.
그러던차에 화천에서 민.관.군이 함께하는 답사산행 기회가오고.....
하지만 주말엔 가을비치곤 제법 많은양이 내린다고하고...
어느정도 갈등은 있었지만 산세가 부드러운 육산에 또한 포장도로도있고....
가기 힘든곳 역사적으로도 피비린내나던 격전지였던 대성산을 오릅니다.
총36명이 산행신청을 하였다는데 비가 온다고하니 20명이 취소라...16명만 군에서 내준 버스타고 군청출발 마현리 말고개로 갑니다.
보통 수피령에서 시작 도로 수피령으로 원점회귀를 하지만 대성산 동쪽에서~서쪽으로 넘어갑니다.
대성산(1175m)은 광주산맥 가운데 솟아 있으며, 남북쪽으로 백운산(1,073m)·화악산(1,468m)·백암산(1,179m)·복계산(1,057m) 등과
이어진다. 산의 동쪽과 남쪽 사면에서는 마현천과 봉오천이 각각 발원하여 북한강에 흘러들고, 서쪽과 북쪽 사면에서는 한탄강의 지류인
남대천이 발원한다. 협곡을 흐르는 하천 양안을 따라 도로와 가옥이 밀집해 있다. 동쪽계곡의 절골 일대와 수피령에 비포장국도가 나 있다.
또한 북동쪽의 말고개는 예로부터 화천-김화 간의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었으며, 6·25전쟁중 국군과 중국군 간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화천으로 나홀로 버스타고가면서....내다보니 구름이 뭉실 뭉실...비가온다고도 했지만 개일것같은 좋은예감.
배낭속엔 우산도 우비도 들어있고.....
화천군청에 9시까지 도착.
9시30분. 말고개 도착.
옛날에 말을 몰고 가던 사람들이 하도 고개가 높아 정상에서 쉬어가곤 했다고 해서 말고개(馬峴)라고 했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는
이곳은 6·25전쟁에서 마지막 전투로 기억되고 있으며, 한 치의 땅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일념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 말고개 전투 >>
말고개는 한중 지맥과 가까운 서석면 내촌천으로 서류하다 두촌면 철정에서 장남천으로 합류해 덩치를 한껏 키운 뒤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총 143㎞에 이르는 홍천강 서부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전쟁 영화를 보면 북한군 탱크를 맨 몸으로 막아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말고개’ 전투가 바로
그런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1950년 6월 25일 새벽, 전면 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은 제2·7사단으로 하여금
춘천·홍천을 통과한 후 이천·수원선으로 우회, 국군의 주력을 차단해 궤멸시킨다는 이른바 초기 승부를 노린
‘3일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당시 서부전선에서는 북한군 의도대로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지만 중부전선에서는 국군 6사단의 강력한 방어로 초기 전투에서
차질을 빚었다. 6사단장(김종오 대령)은 6월 24일 장병의 외출·외박·휴가를 전면 통제하고, 철저히 방어준비를 함으로써
6월 28일까지 방어선을 지켜내는 투혼을 보였다. 6사단은 춘천에 7연대, 홍천 북동쪽에 2연대를 배치하고, 19연대를 예비로
하여 전방을 방어함으로써 북한군의 선제타격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특히 7연대 57㎜ 대전차포중대 2소대장이었던 심일 소위는 6월 25일 오후 소양강·북한강이 합류하는
옥산포(현재 춘천시 사농동) 도로변 소나무 숲에서 매복해 있다가 공격하는 적 2사단 SU - 76 자주포에
뛰어올라 수류탄과 화염병을 던지면서 육탄 공격을 감행, 적 자주포 3문을 파괴하는 큰 전과를 세우고
춘천전투의 신화를 창조하며 ‘자주포 킬러’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춘천 방어는 물론
그 사이 춘천주민들이 무사히 피란할 수 있었다.
((펌)) 야미님 글.
이 추모비는 지난 1996년 7월 27일 120㎜의 집중호우로 일어난 산사태로 순직한 23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승리부대 장병들이 정성을 모아
건립했다. 당시 이곳에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550㎜의 폭우가 7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에 걸쳐 내렸다. 산사태로 내무실이 붕괴해
신성한 국방 의무를 수행하던 23인의 장병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단체사진을 남기고...
금성지구전투전적비.
30개의 계단 위에 자리하고 있는 금성지구전투전적비는 지난 1957년 7월 15일 육군 제3·6·8·11·수도사단에 의해 건립됐으며
현재는 육군승리부대가 관리하고 있다.
이 전투에서 국군은 1만4373명의 인명 손실을 보았으나 적 2만7216명 사살, 3만8700명 전상, 186명 생포 등과 1428정의 무기 노획 등 전사상 초유의 대전과를 획득했다. 국군은 이처럼 적을 격퇴함으로써 오늘의 금성지구를 수복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금성지구전투전적비는
이러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뒤돌아보면 제일 높은산이 적근산이라고한다....사진엔 안보임.
넓은길로 올라오다간 산속으로 진입
옆을보니 넓은 아스팔트길.
춘천의 대룡산 비슷하다.
클릭확대.
클릭커짐
클릭커짐
북한땅이 가까히 보이고...
우리를 길 안내 해준분들
수피령으로 내려가면서...
겹겹히 많은산이 보이는데 저멀리 화학산도 보인다.
내려가면서 옆을보니...
저앞에는 감성마을 이외수님이 살고있는 마을이 보인다고합니다.
대성산지구 전적비는 1951. 6. 9.
국군 제2사단 17연대가 대성산 1,042 고지와 신월동 및 865고지를 탈환 한 후
연이어 6월 14일까지 승암고개, 삼천봉, 바조봉 일때까지 적의 공격기세를 분쇄하였으며,
이 전투에서 적 사실 453명, 생포 19명, 55점의 무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아군의 피해는 전사 38명, 전상 123명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육군 15사단에서는 대성산지구전투 장병들의 영웅적인 전공을 찬양하고
조국수호를 위하여 불굴의 신념으로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넋을 추모하고
그 위훈을 자손만대 길이 전하고자 1980. 8. 15 이탑을 건립하였다.
남과 북이 서로 맞대고 있는한은 지리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곳 수피령, 대성산 일대....
여러 자료를 뒤적이다보니..너무나 가슴아프고 가여운 청춘들이 스러진곳이고....또한 소중한 우리의 자산임을 알았습니다.
이번 답사산행을 주관하신 화천군청 관계자님과 군수님, 15사단 관계자님께 감사함을 드립니다.
길을 안내하여준 군인아저씨 고맙구요. 15사단장님주신 먹거리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답사산행을 안내하여주신 화천군청의 김승철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귀한곳 다녀왔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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