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장군산과 계성사지/ 오지 산속으로
어딜 다녔지 : 계성리텃골(불당골입구) - 계성천임도 - 2코스-쌍두암봉 - 장군산정상-774봉 - 두류산주능선(862봉) - 941봉
- 970봉 - 935봉 - 명지령 - 계성천임도 - 계성사지(석등) - 텃골 (약 10시간)
누구랑: 하나로 특전사 오지꾼들과
언제: 2014년6월8일. 날씨는 흐리고 시야는 좋은날..
계성리텃골(불당골입구) - 계성천임도 - 2코스-쌍두암봉 - 장군산정상-774봉 - 두류산주능선(862봉) - 941봉
- 970봉 - 935봉 - 명지령 - 계성천임도 - 계성사지(석등) - 텃골(약 10시간)
장군산(847.3m)은 화천군 하남면(계성,안평)에 위치해 있고, 백적산(883.5m)은 하남면(안평)과 상서면(구운)에 걸쳐 있다.
한북정맥이 복주산으로 내리면서 동쪽으로 가지친 능선이 실내고개를 거쳐 만산현에서 다시 남쪽의 사내면(사창리)
두류산으로 이어진다.
이 주능선에서 동남쪽의 북한강(화천) 방향으로 길게 뻗은 4개의 능선이 내리는데, 첩첩산중의 이 능선에는
만산, 백적산, 장군산, 놀미뒷산 등 800m이상의 재법높은 봉우리들을 형성하고 있으며, 7~8km가 넘는 긴 계곡도 함께 하고 있다.
그 중 장군산은 계성천계곡(계성골)과 한우고개의 능선에 포사격장이 있고,
가래울계곡(논미천)은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을 통제한다.
따라서 장군산의 경우 현지인 조차도 쉽게 접근할 수가 없는 위치에 있어 오지의 산이라 할 수 있다.
07시37분.
지도에서 보면 이곳이 터골인것같다...
군부대가 보이고...그리고 통행금지라는 문구가 제일 먼저 보인다..ㅋㅋ
계성천.
처음 들어보는 화천 장군산과 계성천이다.
불당골입구 가든앞의 계성천을 따라 6~7분정도 들어가면 다리가 있다.
군부대가 있던곳인데 지금은 한적하고...
다리에서부터 사격장내의 군사도로를 따라 50분정도 들어가면,
사격장이 끝나고 임도가 이어진다.
가운데 보이는 산(쌍두봉)을 향하여...
춘천의 내노라하는 오지 산꾼이신 분들과 함께....
길옆에 보이던 탐스런 오디열매
지금부터는 무척 이쁜 길이 보이고...
경고
사격장 군부대 길이 끝나고 10분정도 임도를 따라 가면
명지령에서 넘어오는 임도 출입자의 출입을 막는 철물이 설치되어 있다.
08시35분.
들머리에서 한시간정도 걸었다.
ㅎㅎㅎ
철문좌우로 가시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어 접근이 어렵지만 철문틈을 이용하여 통과가 가능하다.
철문을 지나 1분정도 가면 임도가 계곡을 건너가는 곳이 있다
넘어와서는...
훨~~~~~ 웬 자동차들이..
나중에 알고보니 명지령에서 넘어온 차들이다.
명지령을 넘어 이곳까지 산악차량이 와서 캠핑한 흔적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계곡을 건너지 말고 우측면을 따라 우측의 지계곡으로 들어가서 좌측으로 붙으면
희미한 길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25~30분정도 들어가다가 우측의 능선으로 붙어 오르면 주능선부에 올라선다.
주능선부에서 23분정도 오르면 계성촌방향의 비탈면(절벽)이 들어난 아래(下)쌍두암봉에 올라선다.
약 10여대의 자동차와 텐트가 보이고.....
아마도 최고의 오지 산속으로 자동차를 몰고온것같다.
다래꽃
우린 2코스로 올라가는데 이게 뭐야 폭탄 흔적들이 보이고...
길도 희미하고
나뭇가지에 얼굴도 맞으면서... 고개숙이고.... 허리굽히고....
완전 오지라 그런가 취나물이 그야말로 대물...
가야할 능선
쌍두봉 아래
올라온곳 저아래가 보인다.
길은 아주 희미하고 작은 돌덩이가 굴러내릴수가있겠다.
약간 넓고 이곳이 쌍두봉.
10시24분. 쌍두봉.
저 끝으로 보이는곳 저 능선 저곳으로 간다고한다...멀어보인다.
지나온 쌍두봉
큰나무
겨우살이
11시22분.
3시간40분만에 장군산 도착.
춘천의 내노라하는 산꾼 세분.
청색글 내용은 가운데분[구름뫼님]의 글을 일부 옮겼습니다.
오지산은 확실히 어느정도 산을 읽을줄아는 분들과 동행을해야 할것같다.
숲도 우거지고 길도 희미하고 더군다나 이정표도 흔히 말하는 꼬리표도 없다.
쌍두암봉(상)의 장군산방향은 바위절벽이므로 계성천방향의 암봉비탈면으로 내려서 8분정도 가다보면 암릉이 나타난다.
암릉에서 35분정도 능선을 따라가다가 올라서면 장군산능선의 봉우리에 올라선다.
봉우리에서 4분정도 거리의 우측(북동쪽)방향에 약간 높아보이는 곳이 장군산정상이다.
2014년 6월 현재 이곳을 다녀간 산꾼들이 달아놓은 정상표지판(3개)이 나무에 달려있다.
장군산 정상에서 14분정도 서쪽방향의 능선을 따라 장군산정상과 비슷한 봉우리에서 우측의 능선으로 20분정도 내려가다가
우측의 약간 가파른 비탈면으로 내려가야 한다. 길이 뚜렷치 않고, 알아볼 수 있는 특별한 물체가 없으므로 지나치기 쉽다.
이 능선갈림지점에서 내려서 9분정도 가면 약간 볼록한 774봉우리에 올라선다.
이곳에서 안부로 내려서면 뾰족한 작은 봉우리가 있다.
이 봉우리로 바로 올라도 되고, 우측으로 희미한 짐승다닌 길의 흔적을 따라가도 된다.
화천 오지산인 장군산에 와라바라산악회 꼬리표를 달고계시는 큰별 전회장님.
그저 와라바라 애정이 보입니다.
장군산 정상.
주변을 둘러보아도 삼각점도 안보이고 군부대 참호라나 땅을 판 구덩이만 보인다.
11시40분.
장군산을 조금 내려오니 약간 넓은 자리에서 점심상을 펼친다.
차갑게 얼려온 큰별님의 맥주잔[주석잔]과 맥주.
주석잔을 만지니 차갑다.
차갑게 얼려오신것같다.
차가운 주석잔에 맥주를 받아 마시니
갈증은 단번에 날라갔다.
그렇게 산중에서
마시는 맥주를 무슨 맛에 비할까....!!!
큰별님 무겁게 지고오신 맥주
최고로 맛있는 맥주였어요.
감사합니다.
941봉
오후3시8분.
산속을 빠져 나와서...
명지령 도착.
명지령.
오후 3시10분. 명지령.
잠시 휴식을 하고.....이제부터는 임도길로 내려가야 한다는데...
길옆에 보이던 비닐집
계성사지.
고려 충렬왕 때 세워진 계성사 건립 때 같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등은
불을 밝히는 화사석이 6각형인데 이러한 6각형 석등은 우리나라에 총 4기뿐이 없다고 한다
계성리 석등은. 화천에서 유일한 보물이라고한다.
[보물 제 496호]
계성리 석등은 숲길 곁에 철제 울타리 안에 있었다.
육각의 석등은 화사석 둥근 창이 여섯 개다.
소박하면서도 연꽃 무늬까지 제법 멋을 냈다.
본래 석등은 지금의 자리 위쪽의 절터에 있던 것이었다.
지금은 분교나 마을이 있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지만,
본래 이곳에는 인근의 형석 탄광에 생계를 대던 63가구가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 1968년 마을을 휩쓴 수해로 주민들은 하나둘 떠났고,
그때 비워진 터가 원시림으로 들어가 지금껏 남아있다.
가지 않고 멀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자연이 저 스스로 얼마나 아름다워지는지.
그 길에 오르면 알 수 있다.
[검색]
약 10여대의 산악차량.
캠핑을 끝내고 가는가보다....아이들도 보이고 어쩌면 참 잘 살고있는 젊은이들같다.
폐가와 녹슬은 오토바이
자동차들이 야영하던곳.
혹여나 쓰레기를 버리고 가지 않았을까도 생각했는데 왔다간 흔적도 없이 깨끗하였다.
다시 넘어서...
오후 5시47분.
07시40분 부터 약 10시간 정도....걸었다.
오지산행은 특별한 경험이다.
오지산행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것도 아니다.
나침판도 중요하지만
산을 읽을줄아는 리더가 확실하고
동물적인 감각도 참 중요하다고본다.
거기에 스마트폰으로 보는
최첨단 장비까지 이용하니...
단지 내가 그중 걸음속도가 좀 늦어서 민폐가 되지않았나도 생각되지만...그래도 잘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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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세기 동안 숨겨진 깊고 유연한 숲길을 만나다
화천은 도처가 ‘닫힌 땅’이다. 차단과 통제 너머의 땅은 저 스스로 자연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최전방 지구만 닫혀있었던 건 아니었다. 화천 일대에 들어선 군부대와 훈련장들도 길을 막았다. 그중 한 곳이 바로 명지령 아래 계성리 옛 마을 일대다. 양의대가 민통선의 바리케이드에 닫혀 있었다면, 화천의 장군산 아래 계성리 옛 마을은 불을 뿜는 전차에 가로막혀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잊혀진 곳이다.
터골, 은골, 소년골, 피나무골…. 이름마저 희미해진 계성리의 옛 마을로 이어지는 길에 들어섰던 건 계성리 석등을 찾기 위해서였다. 희미하게 흔적만 남은 마을 한복판 분교터에 화천의 유일한 보물인 ‘계성리 석등’이 있다고 했다. 고려 때 만들어진 국내에는 단 두 개뿐인 육각의 둥근 창을 가진 석등이다. 6·25전쟁의 포화가 지나간 화천 땅에 국보는 한 점도 없고, 보물도 딱 하나, 이 석등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이 석등은 치열한 전쟁통에 어찌 살아남았을까.
이유는 간명했다. 석등이 선 자리가 깊고 또 멀기 때문이었다. 길의 출발은 하남면 계성리의 터골이다. 계성천과 보령골의 물길이 모이는 터골에는 토종닭 백숙을 파는 식당 ‘개울건너집’을 포함해 여섯 가구가 고작이니 출발부터가 오지마을인 셈이다. 그 마을에 50여 년 전에 전차훈련장이 버티고 있다. 계성리 석등까지 이어지는 길은 훈련장을 관통한다. 이곳 훈련장에서 전차가 불을 뿜는 건 1년에 서너 번에 불과하니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드러내서 알리지는 않지만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일요일 오후 8시까지는 일반인들의 출입도 허용한다.
전차훈련장을 끼고 계성천 물길을 따라 명지령 쪽으로 향했다. 황토흙이 드러난 황량한 전차사격장을 지루하게 지나자 이내 울창한 숲길이었다. 조림의 흔적 없이 저절로 자란 숲이다. 길 옆으로 바짝 계곡물이 따라왔다. 높낮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길은 편안했다. 뻐꾸기 울음소리 사이로 가끔 딱따구리 소리가 섞여 들었다. 인기척에 놀라 툭 튀어나온 고리나가 숲속으로 달아났다. 징검다리가 놓인 물길을 대여섯 번쯤 건너가면서 이런 길을 따라 1시간 30분을 걸으면 그 길 옆에 석등이 있다.
계성리 석등은 숲길 곁에 철제 울타리 안에 있었다. 육각의 석등은 화사석 둥근 창이 여섯 개다. 소박하면서도 연꽃 무늬까지 제법 멋을 냈다. 본래 석등은 지금의 자리 위쪽의 절터에 있던 것이었다. 지금은 분교나 마을이 있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지만, 본래 이곳에는 인근의 형석 탄광에 생계를 대던 63가구가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 1968년 마을을 휩쓴 수해로 주민들은 하나둘 떠났고, 그때 비워진 터가 원시림으로 들어가 지금껏 남아있다. 가지 않고 멀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자연이 저 스스로 얼마나 아름다워지는지. 그 길에 오르면 알 수 있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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