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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악녀 미실, 그리고 그를 연기하는 영악한 배우 고현정

by 창 포 2009. 6. 4.

 

 

매력적인 악녀 미실, 그리고 그를 연기하는 영악한 배우 고현정

 

 

 

 

 

 

숱한 화제를 뿌렸던 선덕여왕이 베일을 벗었다. 화제성 강한 두 여배우 고현정과 이요원을 필두로 연기파 배우 엄태웅, 전노민, 정웅인에 최근 주목받고 있는 박예진 그리고 기대되는 유망주 유승호까지. 말 그대로 초호화 캐스팅이라 할 수 있는, 속된 말로 “허덜덜한” 출연진들이 집결한 선덕여왕. 어제 그 첫 회의 시작은 아주 화려했다.

 

 

 

그 화려함 속에서도 단연 돋보였던 것은 바로 고현정. 그녀가 맡은 화랑의 우두머리 미실. 앞으로 등장하게 될 다른 배우들이 어떠한 포스를 보여줄 지 알 수 없으나 어제 단 한 회에서만큼은 극 중에서 가장 많이 두드러졌다. 아니, 한 회 전체를 통틀어 강한 힘으로 화면을 장악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미실이었다. 삼국 통일의 주체가 되었던 신라의 대표적인 기구 화랑을 책임지고, 옥새를 관장하고 있는 담당자인 새주로서, 당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던 진흥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애첩으로서 미실은 그 누구도 부럽지 않는 강한 권력의 정점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런 권력자에 알맞게 강한 포스를 내뿜는 미실.

 

 

 

 

 

 

첫 사극 도전이라 어쩌면 많은 부담감과 위험을 가지고 있었을 고현정이었을 텐데 그녀는 그러한 우려를 단박에 불식 시킬 만큼 멋진 연기를 보여 주었다. 예상과 달리 그녀는 화랑의 우두머리로서 갑옷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으며, 또한 그 어울리는 모습만큼이나 멋진 액션까지 보여주었다. 또한 진흥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애첩인 만큼 앞서 보여주었던 강한 여장부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나긋나긋하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전형적인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극의 초반 진흥왕 역을 연기한 이순재님과의 연기에서,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충성심이 강한 여성으로 보였다. 그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자 한걸음에 달려가 그를 위기에서 구해 내었으며, 차 수발을 들 때에도 적당한 애교로 그의 기분을 맞춰주기도 하고 몸이 불편한 그를 위하여 그를 돌보는데 최선을 다했다. 물론 그러는 중에도 가마를 제대로 들지 못한 가마꾼을 과감히 죽여 버리는 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녀의 온화한 가면 아래에 숨겨진 사악한 일면을 잠시 보여주기도 했었지만.

 

 

 

 

첫 화는 너무도 이야기 전개가 빨랐다. 어쩌면 그런 빠른 전개가 극의 몰입에 도움이 주었는지도 모른다. 자칫 지루해서 채널 돌아가기 쉬운 첫 방송을 급격한 스토리 전개를 통해서 한눈 팔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한 스토리 전개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미실의 모습 때문에, 그 모습들을 즐기느라 또 집중하게 되었지만…….

 

 

그랬다. 미실은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진흥왕의 앞에서 충성심 강한 신하의 모습으로 일관하던 그녀는 자신의 정부인 설원랑 앞에서는 완벽한 요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색(色)으로 신라의 정치를 뒤흔들었다는 미실 역에 맞게끔 그녀는 앞선 장면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 완전히 다른 변신을 한다. 정갈하던 옷차림이 아닌 조금은 야시시한 옷차림에, 조신하고 사근사근한 어투가 아닌 자신감 넘치고 남자를 유혹하는 듯 색기 어린 말투.

 

갑작스런 그녀의 변신에 정신을 못 차릴 즈음 그녀는 다시 변신을 한다. 시체가 널브러진 복도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아니 의례적인, 약간의 미소마저 머금은, 가식적인 얼굴로 진흥왕의 앞에 독을 탄 탕약을 가져간다. 그리고 앞서 자신의 정부인 설원랑에게 보여줬던 그 모습들을 완벽하게 지운 채 마치 현모양처의 그 모습처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탕약을 드시라고 고한다. 그리고 곧 그의 죽음을 확인한 그녀는 다시 얼굴이 바뀌어 버린다. 광기를 머금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야 말겠다는 선전포고와 같은 그녀의 날카로운 대사 하나 하나가 보는 나로 하여금 또 다시 움찔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방송 이후 모든 포털 기사나 리뷰들에서 찬사를 한 장면, 바로 진지왕에게 황후자리를 내 놓으라던 장면이었다. 왕위에 오르도록 도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내치려는 그에게 미실은 자신이 낳은 아이를 데려가 당신의 아이를 다른 이의 자식으로 키울 것이냐며 맞선다.

 

 

아이를 보고도 꿈쩍도 하지 않는 그를 보고 그녀는 아이를 차가운 바닥에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한다.

 

 

"미안하구나, 아가야. 난 이제, 이제 더 이상 네가 필요 없다."

 

 

누구에게나 모성은 있고 자식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것이 어머니가 아니었나? 그러나 미실은 달랐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선 자식마저도 그녀에게는 그저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울고 있는 아이를 차갑게 바라보며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돌아서 가는 그녀를 보며 ‘아, 미실은 보통 여자가 아니구나. 지금까지 보아오던 그 어떤 여성 캐릭터, 아니 남녀 모두 통 틀어 본 적 없는 완벽히 새롭고 또한 매력적인 캐릭터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게끔 잔인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그의 앞에서 아니, 온 세상 앞에서 화랑들의 낭자결의를 선보이는 미실. 여기서 그녀의 카리스마는 절정에 달했다. 그 참혹한 모습에 남자들마저 고개를 숙이고 놀라는 반면 그녀는 역시나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너무도 초연하게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나, 미실 앞을 막아설 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라는 것을...

 

 

 

 

선덕여왕은 너무도 매력적인 캐릭터 미실을 발판으로 월화극의 경쟁에서 쉽게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실제로 시청률 1위라는 결과로 벌써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저렇게 영악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야 마는, 그저 미워하려해도 마약처럼 빠져들게 만드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 왜 고현정이란 배우가 선덕여왕을 버리고 미실을 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미실은 그저 그런 악역이 아니었다. 충분히 주인공인 선덕여왕을 뛰어넘을 수 있는 그런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였다. 그런 캐릭터를 알아보고 선택한 고현정이란 배우 역시 그래서 아주 영악하다는 것도 알 것 같았다.

 

선덕여왕을 그리는 드라마지만 이미 첫 방송부터 드라마는 미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선덕여왕 역을 맡은 이요원이란 배우에게 시선이 빼앗기지 않도록” 하겠다던 고현정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요원이란 배우가 지금부터 긴장을 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이 드라마 역시 해신에서 악역인 염장이 사랑을 받고 주인공인 장보고가 욕을 먹었던 것처럼 악역인 미실이 사랑받고 주인공인 선덕여왕이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원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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